탁넬리 선교사 약력

숭실대학교 사학과 김주안

탁넬리(Nellie Grant Dick Adams, 1866–1909)의 생애와 대구 초기 선교

탁넬리(Nellie Grant Dick Adams, 1866.9.15.–1909.10.31.) 선교사는 대구·경북 개신교 선교의 개척자 안의와(安義窩, James Edward Adams, 1867–1929) 선교사의 배우자이자 동역자로서, 1895년 내한 이후 부산과 대구를 중심으로 초기 여성 성경 교육과 선교 공동체 형성에 헌신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입니다.

1. 출생과 청년기 선교 운동(1866–1894)

1866.9.15. 미국 오하이오(Ohio)주 버틀러(Butler) 카운티 해밀턴(Hamilton)에서 개척기 의사 조지 프레더릭 딕(George Frederick Dick, 1827–1913)과 데디미아 앤 오그덴 딕(Dedemia Ann Ogden Dick, 1828–1886)의 딸로 출생하였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캔자스주 토피카(Topeka)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습니다.

1881. 로렌스(Lawrence)에서 열린 쇼토쿼(Chautauqua) 기독교 교육·문화 집회에 참석하며 신앙과 교육 운동에 관심을 넓혔습니다.

1886. 여성청년선교회(Young Ladies Missionary Society), 기독청년면려회(Christian Endeavor), 여성기독청년회(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이하 YWCA)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청년 선교 동원과 여성 기독교 교육을 이끌었습니다.

1891. 뉴욕 의료선교훈련원(New York Medical 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해외 선교지에서의 보건·구호·여성 사역을 준비하였습니다.

1893.12.27. 학생선교자원운동(SVM)과 신학교 간 선교 연합회(AISMA)에서 활동하던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와 결혼하였습니다.

1895.2.6. 캔자스주 토피카에서 첫째 아들 안두화(安斗華, Edward A. Adams, 1895.2.6.–1969.9., 계명대학교 설립자)를 출산하였습니다.

2. 내한과 부산·동래 초기 사역(1895–1897)

1895.4.29.–5.24.(5.29.)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여 하와이,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쓰시마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한국 선교 기간: 1895.5.29.–1909.10.31.).

1895.5.–1897.2. 부산선교지부에서 약 10마일(약 16km) 떨어진 동래의 한옥에 거주하며 한국어와 현지 생활 문화를 익혔고, 안의와 선교사의 한문서당 산수 교육과 금요 성경반 사역을 도우며 지역 여성들과의 접촉점을 넓혔습니다.

1897.4.–5. 안의와 선교사가 매입·수리한 대구 선교지부 처소를 가족과 함께 방문하여 내륙 선교 정착을 준비하였습니다.

3. 대구 정착과 초기 교회·여성 사역(1897–1909)

1897.11.1. 가족과 함께 낙동강 수로(배편 11일 소요)를 통해 대구로 완전히 이주하였으며, 안의와·장인차(Woodbridge O. Johnson) 선교사 가족 및 조사 김재수와 함께 대구제일교회의 초기 예배 공동체를 조직하였습니다.

1898.1.14. 대구에서 둘째 아들 안변암(安邊巖, Benjamin N. Adams, 1898.1.14.–1994.1.23.)을 출산하였습니다.

1898.5.–1898.6. 낯선 내륙 환경과 연이은 출산·육아, 초기 정착의 과로로 산후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겪었으며 팔공산 파계사에서 한 달간 요양한 뒤 부산과 김해에서 회복 기간을 가졌습니다.

1899.4.–1900. 건강 회복을 위해 일시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로 귀국하였으며, 1899.11.2. 토피카에서 셋째 딸 도로시 아담스(Dorothy D. Adams, 1899.11.2.–1996.12.3.)를 출산한 뒤 건강을 추슬러 다시 대구 선교지로 복귀하였습니다.

1902.–1908. 대구 선교지부의 부인 성경반과 여성 전도 사역, 선교사 가정의 손님 접대와 초기 교인 돌봄을 감당하며 대구·경북 지역 여성 신자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1907.8.6. 대구에서 넷째 아들 안두조(安斗照, George J. Adams, 1907.8.6.–1985.12.)를 출산하였습니다.

1909.10.31. 다섯째 아이 임신 중 유산과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대구에서 향년 43세로 별세하였으며, 대구 선교사 묘역(현 동산의료원 은혜정원)에 안장되었습니다.

4. 대구 교회사에서의 의의

탁넬리 선교사는 대구 개신교 선교 초기의 열악한 주거·위생 환경 속에서도 동래와 대구 내륙 정착을 함께 감당하며, 남성 중심의 공적 기록 뒤에 가려지기 쉬운 초기 선교지 가정의 돌봄, 여성 성경반 형성, 다음 세대 선교사(안두화·안변암·안두조) 양육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관련 가족 연보와 안의와 선교사의 전체 사역 연표는 안의와 선교사 가족 약력과 안의와 선교사 약력에서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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