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8편 배경지식: 지나간 역사와 신실한 목자 다윗의 선택
시편 78편은 시편 전체에서 두 번째로 긴 시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학적이고 교육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역사 시(Historical Psalm)이자 지혜 시(Maskil)이다. 아삽은 이 노래를 통해 지나간 세대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대조하며, 다음 세대에게 언약의 율법을 가르쳐 조상들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는 뚜렷한 교육적 목적을 제시한다. 시인은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와 인간의 거역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거울로 묘사한다.
이 시의 서두(1-8절)는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는 선지자적·지혜문학적 선언으로 시작한다. 아삽은 이 역사적 교훈을 “비유”(mashal)와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은밀한 말”(chidot)이라고 부른다. 이는 역사 속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드러내어 백성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증거와 법도는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 대대에 전해야 하는 성격의 것이며, 이를 통해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의 행사를 잊지 않게 하려는 언약적 전수가 강조된다.
9-16절은 북왕국의 대표 격인 에브라임 자손의 배반을 먼저 언급하며 경고의 포문을 연다. 에브라임은 무기를 갖추고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분께서 행하신 기사를 잊어버렸다. 시인은 고대 이집트의 “소안(Zoan) 들”에서 행하신 기적, 곧 홍해를 갈라 물을 무더기같이 세우시고 백성을 지나가게 하신 일과 광야에서 구름과 불초로 인도하시고 반석을 쪼개어 깊은 샘물처럼 물을 마시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상기시킨다. 소안은 나일 삼각주 동북부에 위치한 왕실 성읍으로 이집트 억압의 중심지였기에, 그곳에서의 기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구원 능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이다.
17-31절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보인 끊임없는 불신과 원망을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백성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며 그들의 탐욕대로 먹을 것을 요구했고,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라며 하나님을 모독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으나 그들을 위해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주셨고, 동풍과 남풍을 일으키사 메추라기를 먼지처럼, 바다 모래처럼 내려 흡족하게 먹이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들이 가장 탐할 때에 진노를 내리사 그들 중 강한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거꾸러뜨리셨다. 광야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돌봄의 현장인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계시되는 장소였다.
32-39절은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신성을 조명한다. 백성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었고 그분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날을 허무하게 보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재앙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구속자이심을 기억했다. 비록 그들의 입과 혀로 아첨하며 거짓을 말하였으나, 하나님은 자비하사 그들의 죄악을 덮어주어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분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단지 “육체이며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시는 자비로운 언약의 목자로 묘사된다.
40-55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린 완악함을 지적하며,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 중 주요 사건들을 시적으로 회상한다.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사 마실 수 없게 하신 일, 파리 떼와 개구리를 보내어 해치게 하신 일, 황충과 메뚜기로 토산을 먹이시고 우박과 서리로 포도나무와 뽕나무를 죽이신 일, 가축들을 전염병과 폭풍에 넘기신 일,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치셨던 구속의 권능이 언급된다. 하나님은 이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안전하게 지도하셨으며, 약속의 땅으로 이끄사 원수들을 쫓아내시고 지파들에게 기업을 나누어 주셨다.
56-64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계속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배교를 다룬다. 백성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하여 조상들처럼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갔으며, 산당을 지어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고 조각한 우상들로 그분을 질투하게 만들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시고, 실로(Shiloh)의 성막, 곧 인간 중에 처하셨던 장막을 떠나셨으며 그분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고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 실로는 사사 시대 성막과 언약궤가 안치되었던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지였으나, 에브라임의 불순종으로 인해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비극적인 심판을 맞이했다.
65-72절은 이 시의 절정이자 최종적인 신학적 선언이다. 침묵하시던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용사처럼 일어나 대적들을 물리쳐 영원한 수치를 안겨주셨다. 그리고 중요한 구속사적 선택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요셉) 지파를 버리시고 실로를 회복하지 않으시는 대신,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셨으며, 그분의 성소를 높은 산 같이 영원히 세우셨다. 또한 그분의 종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택하사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이끌어내셔서, 야곱 곧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 곧 그분의 기업을 기르게 하셨다. 다윗은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공교함으로 백성을 지도하는 신실한 목자로 서술되며 시는 마무리된다.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시편 78편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Sovereign Election)과 언약적 신실하심(Covenant Faithfulness)을 강력하게 실증한다. 실로의 폐허와 에브라임의 거부는 인간의 성취나 혈통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스라엘의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유다 지파와 다윗을 택하심으로써 중단 없이 이어졌다. 이는 세대 간 신앙 교육의 엄숙한 책무를 일깨우며, 모든 구속사의 중심에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주권적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게 만든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편 78편은 구약의 목자 다윗을 넘어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한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비유로 천국 비밀을 가르치실 때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마 13:35) 하신 말씀이 이 시편 78편 2절의 성취라고 선언했다. 그리스도는 역사 속에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완전히 드러내신 계시의 절정이다. 또한 다윗처럼 양들을 위해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정교함으로 인도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계속된 거역과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원한 시온을 세우신 참된 목자이시다. 따라서 성도는 이 시를 읽으며 신앙 전수의 엄밀함을 결단하고, 보이지 않는 역사 속에서 신실하게 구원을 완성해가시는 그리스도를 신뢰해야 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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